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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론 7권을 읽고
* 2014년에 쓴 글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론 제 7권을 읽고


Ⅰ 서론

플라톤의 국가론 제 7권을 읽으며 우리가 지각하는 것들이 참 실제가 아니며 '이데아'의 존재를 말하는 것은 참신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대체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 무슨 문제가 있기에 이데아의 존재를 설정했을까? '어떤 상황에서 플라톤이 한 명의 통치자에 의한 지배적인 국가를 생각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실재와 이데아에 대한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서양 고대철학 1』을 살피며 당시 그리스의 상황을 고려하여 플라톤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했다.

 7장에서는 유명한 동굴 비유가 나온다. 우리들 모두는 발과 목이 묶인 채 동굴 벽의 한 면을 보고 있고 동굴 밖에 있는 실재들의 그림자만을 보고 있다는 내용이다. 만약 발과 목이 묶인 사슬이 풀려 밖에 나가 밝은 빛, 즉 실재를 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다시 동굴에 돌아와 그것들을 전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그저 아직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다고 표현하며 국가는 전체의 행복을 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왜 그가 동굴로 돌아와야 하는지, 사람들은 왜 그를 죽이려고 하는지, 철인왕의 일방적인 지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보고자 했다.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에서 사고 모델의 개념을 살피며 왜 사람들이 진리를 거부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고 『희락철학입문』에서 실재와 플라톤의 국가관을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궁금증을 풀어가고자 했다. 또한 실재에 있어선 국가론 제 6권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선분 비유를 통하여 통치자의 교육에 대해 알아보고 현재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깨달을 점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Ⅱ 본론


1. 동굴 비유에 대하여
1) 참된 앎, 실재, 이데아는 존재하는가?

 동굴 비유에 들어가기 앞서 플라톤이 정의하고 있는 실재, 이데아에 대하여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플라톤은 개별적인 덕과 용감함, 지혜, 친절함과 같은 행동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동 뒤에 있는 본질을 이해하고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것을 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이러한 절대적인 덕행과 올바름, 즉 이데아가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절대적인 선이 있다고 한다면, 여태 인류가 행해온 모든 활동들은 전부 불완전한 행동과 불완전한 접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직접 행할 수 있는 개별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논외로 하더라도 무엇이 남는 것일까? 절대적은 선은 어디에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고 알아갈 수 있는가?

 플라톤은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인식과 지각의 차이를 들어 답변한다. 인식의 대상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어서 시간과 같은 변화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고, 감각은 우리를 변화하는 것들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인식의 대상, 즉 정의될 수 있는 것들은 존재하나 지각의 세계에서는 그것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른 현상을 보고서 비슷하다, 동일하다 따위의 관념과 개념은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이데아에 의해서 똑같이 생각되는 가정에 의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상적인 세계를 가정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상적인 세계, 선에 나아갈 수 있는지는 이후 통치의 개념에서 선분 비유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책을 읽으며 플라톤은 지식이 높아질 수 있다는 믿음과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이 꼭 필요하다고 확신했던 것 같다. 개별적인 행동들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반 명사이 형이상학적 실재성을 나타내며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하게 알아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아무런 발전도 없다는 주장은 실로 놀랍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하나하나 의문을 던지고 사고하며 이를 통해 세계관을 확립하는 플라톤의 태도는 지금도 본받을 만 하다.

2) 우리는 어떻게 이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가?

 이상적인 세계가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는 다른 것에서 같은 것을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영구적이고 이상적인 세계를 가정했을 때 불완전한 우리는 어떻게 영원한 형상을 알게 되었을까? 우리가 볼 수 있는 물건과 생물이 어떤 형상에 속하는 것인지, 행위가 형상에 비추어 좋음이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혼을 보살피라라고 말하였는데 당시 혼의 본성에 관한 종교 개혁가들의 이론, 당시 희랍인의 믿음을 살펴보면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은 육신과 혼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육신이 죽음을 맞을 때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된다. 혼은 영원한 세계에 속하는 것이라는 피타고라스 교설을 인용하였다. 육신의 죽음, 즉 삶과 삶 사이에 있는 동안의 혼은 초월적인 실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이 내용의 기본적인 가정은 불완전한 것이 혼자서 완전한 인식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고 이는 불완전한 우리와는 다른 완전한 이상적인 세계를 가정했기에 당연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따라서 모든 지식은 사실상 상기이며 감각적 지각에 의해 혼으로 하여금 앎에 대한 열망을 불러내는 것이다. 참고로 혼에 속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쁜 것이 없어 지혜에 의해 다스려져야 하므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강조된다.

3) 그토록 확실한 진리를 우리는 왜 무시하는가?

 이상적이고 확실한 진리가 있다면 우리는 왜 그 진리를 무시하는 것일까? 7권에서도 나와 있듯이 밖에서 다시 동굴로 들어온 사람을 시샘하고 죽이기까지 한다.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에서도 동굴 밖에 나가 빛을 본 부기가 경험했던 것은 동료의 비난이었다. 이는 사고 모델(mental model)의 개념으로 살펴볼 수 있다. 1940년대 스코틀랜드의 심리학자 케네스 크레익이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상과 조직에 적응해가는 방식에 대해 가진 신념, 이미지, 가정을 의미한다. 그 누구든 세상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가질 수 없기에 사고 모델은 항상 불완전하다. 그러나 사고 모델은 우리의 추리를 사실로 여기게끔 유도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리터(Karl Ritter)는 
자기의 동료들 및 신들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현존의 관습을 지키는 사람은 칭찬을 받으며 존경받고 선량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반면 관습을 어기는 사람은 멸시당하며 징계받고 나쁜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상황에 있어서는 준법이 개인에게 이익을 주는 반면 위법에는 손해를 끼친다. 관습과 법을 따르는 개인은 행복하고 만족을 얻는다.
고 말한다. 이러한 예는 단지 동굴로 돌아온 사람 뿐만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지동설과 같이 기존 사고모델과 다르게 말하는 경우에 모두 해당될 수 있다.

4) 왜 돌아와야 하는가? : 실천적 앎

밖에 나가 빛을 본 사람, 실재를 깨달은 사람은 다시 동굴의 죄수들 사이로 내려와 그들의 노고와 명예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는 의무를 제시하는데 쉽게 공감되지 않는다. 그라우콘의 질문처럼 더 좋은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왜 더 나쁜 생활을 강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플라톤은 행복은 국가 속에 있어야 하겠고, 설득과 강제로써 국민을 결속시키고 각자가 국가에 기여함으로써 서로 덕을 보는 것이었지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플라톤의 국가관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었는데, 현대의 통치자들이 정치적인 야심과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똑같이 떠올렸던 것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통치자는 엄격하고 불가피하게, 마지못해 관직을 취할 것이고 돈, 섹스, 가족주의와 같은 이기심에서 제외되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제야 왜 플라톤이 꿈꾸는 국가가 이상적이라고 불리는지 감이 오지 않는가?


2. 국가에 대하여
1) 어떻게 통치자를 기를 수 있나?

통치자에게 필요한 자질은 주로 국가론 6권에서 주로 설명하는데 철학적인 정신의 소유로 요약할 수 있다. 7권에서, 통치자는 음악과 체육을 제외하고 군사적, 철학적인 지식을 깨우쳐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기술과 학문, 지능이 공통으로 사용하는 것들을 배워야 하는데 수학, 평면기하, 입체기하, 천문학이 이에 해당하고 결국 변증법적 대화의 힘을 인식하는데 이르게 된다. 선분 비유에서 가지계와 가시계를 나누었는데 앞서 언급한 것에서 지각과 인식을 나눈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가지계의 최상, 즉 최고선인 형상을 알아가기 위하여 수학적 대상인 학문을 배워야 하고 변증법으로써 제 1원리에 나아갈 수 있다.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시각적인 것은 태양이라는 제 3요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의 이데아에 대한 직관을 통하여 진정한 앎으로 나아갈 수 있고 이러한 선으로부터 형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데아는 평면적인 세계가 아니고 계급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형이상학적 구분을 근거로 하여 통치자의 교육에 대해 설명한다.

  플라톤이 주장하는 교육은 지금 보기에 참 해괴하다. 17,8세까지의 예비교육을 받고 3년간의 신체 및 군사훈련, 10년간 고등학문 내지 수학 공부, 5년간 철학 최고 분야를 연구하며 35세부터 50세까지 하위직에 종사한 후 50세가 되어야 평가받고 공공선을 위해 일할 수 있다. 내가 공감하는 부분은 15년간의 하위직 종사 기간인데 수호자는 정치적 욕망이 없어야 하고 일에 대한 집착이 없어야 하기에 하위직에서의 인고의 시간이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과 섹스와 가족이기주의의 부정을 강제하여 통치를 짊어지고 가야할 의무를 선사한다!

2) 통치자의 노력으로 충분한가?

 이상적 국가를 만들기 위해 통치자가 실재를 깨닫고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체력적, 군사적으로 준비되어야 하며 통치자 한 명을 통하여 위로부터 나라가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어 책의 다른 부분도 살펴보았다. 플라톤이 영혼의 삼분설과 더불어 생산자 계층, 국가의 방위를 위한 수호자 계층, 국가의 내적 안녕과 질서를 위해 사회적 욕구를 다스리는 통치자 계층으로 나누는 것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계층의 구분을 접했을 때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누는 것을 강제하고 그에 따른 역할만 충실하면 된다고 하는 플라톤의 말이 비인격적으로 느껴졌다. 개인의 성향과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닌지, 또 소수의 통치자와 수호자를 내우는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 계층이 고유하게 가질 수 있는 덕의 수준이 기본적으로 통치자 계층의 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존이 나머지 계층의 덕이 수준이 낮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계층의 고유한 기능적, 실천적 덕과 계층 간의 완전한 조화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덕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 중 하나는 덕이 기능적이고 실천적이며 사회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이미 실천적 당위를 앎의 필연적 귀결로 인지하고 있었고 실은 이것이 동굴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이유와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사회의 욕구는 물질적인 것으로써 이미 획일화되어 있다. 자본의 효율성 제고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이해하고자 하면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성향에 따라 각자 다른 소질과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인간이기에 근본적으로 상호-의존 관계를 요한다. 따라서 분업의 원리에 기초하여 계층 간의 협동 관계를 맺는 것은 가장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자연적으로 지닌 성향이 기본이 되어 사회 구성원 각자의 고유한 능력이 자발적으로 발휘된다면 이것은 모두의 생존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분업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Ⅲ 결론

플라톤의 이상 국가를 한 명의 절대자에 의한 군주통치로 여겼던 것을 반성하며 왜 국가론이 자본주의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다. 플라톤의 국가는 지극히 다른 성격과 요소가 균형을 맞추어 유기적인 조직을 이룬 상태이다. 제시하는 세 계층이 다른 계층의 기능을 탐하지 않고 자기 본연의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평화의 상태를 누리는 것이다. 이는 개개인의 자연적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통치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함을 잊지 않는다. 플라톤은 우리가 흔히 바라보는 명사와 행동에서 발견하는 이상적인 세계, 이데아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완전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선으로 인도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는 이상적이지만 뜬 구름을 잡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실천적 행위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통치자들에게 강제하는 의무들이 가장 인상 깊다. 돈, 섹스, 가족주의에서 벗어나 마지못해 잡은 권력, 그리고 변증법적 사고를 통한 형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진 통치자가 있다면 정말 행복한 국가가 되리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처음부터 건강하고 평화롭기만 한 국가가 아니라 사치, 부정, 분열, 전쟁, 가난과 같은 긴장 속에 있는 국가가 통치자를 중심으로 분업적 기능의 완벽한 조화와 갈등에 의해 유지되고 보존되는 것이 진정 정의가 숨쉬는 국가일 것이다.

Ⅳ 참고 문헌

『국가론』플라톤/박영신 옮김
『희랍 철학 입문』거스리/박종현 옮김
『서양고대철학1:철학의 탄생으로부터 플라톤까지』강철웅,박희영,이정호,전헌상 외 지음
R.A. Alles의 영역본『The Essence of Plato’s Philosophy』(Allen & Unwin, 1933)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데이비드 허친스/신동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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