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Researcher @NCSOFT
TODAY TOTAL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한 데 대한 위안
무엇이면 나는 만족할까


청소년기에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에피쿠로스라고 대답하곤 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삶을 가득 채워나가는 내가 "쾌락주의"로 일컬어지는 에피쿠로스를 좋아했다는 것이 역설적이기도 했으나 그가 제시한 쾌락과 아타락시아는 사람들의 상상과는 꽤 달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서 다시금 그를 바라본다. 요지는 간단하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나에겐 무엇이 필요할까?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에피쿠로스는 포도주보다 물을 마셨으며 빵과 야채와 한 줌의 올리브로 꾸민 만찬으로도 행복해했다. 으리으리한 집도 없었다. "마음 내킬 때마다 잔치를 베풀도록 치즈 한 단지를 보내주게나"라고 그는 한 친구에게 부탁했다. 그가 소중히 여겼던 것은 우정, 자유, 사색이었다. 


 에피쿠로스와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기 위해 아테네 상업의 고용 관계에서 빠져나와("우리는 일상과 정치라는 감옥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했다"), 사회적인 의미의 독립을 누리는 대신에 보다 검소한 생활 방식을 수용하면서 일종의 공동생활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이 가진 돈은 보잘 것 없을 수 있었으나 그들은 불쾌한 상사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었다. 집 근처의 약간 떨어진 정원에서 반찬용 채소를 가꾸어 호화롭지도 풍성하지도 않았으나 먹음직스럽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으로 채웠다. 에피쿠로스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혼자 음식을 먹지 말도록 권했다. 결핍에서 오는 고통만 제거된다면 검소하기 짝이 없는 음식도 호화로운 식탁 못지않은 쾌락을 제공한다.

 그러한 소박함은 친구들의 위신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아테네가 중히 여기는 가치들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그들은 더이상 물질적인 기준으로 자신들을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에서 벗어난 곳에 사는 친구들 사이에는, 서로에게 (경제적으로) 입증해 보일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행복의 물질적 환상

 값비싼 물건들이 크나큰 기쁨을 안겨다 주지 못하는데도 우리가 그런 것들에 그렇게 강하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따로 있는데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때 그럴듯한 해결책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건들을 심리적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것들을 마치 물질적 차원에서 확보하는 듯한 환상을 준다.

 이런 혼돈의 책임을 전적으로 우리가 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쓸데없는 의견들"로 인해 더욱 악화된다. 그런 의견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반영하지 못하고 호화스러움과 부만을 내세울 뿐 우정이나 자유, 사색은 좀처럼 강조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의견들이 널리 횡행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의 순위를 왜곡하고, 행복의 물질적 환상을 높이 장려하는 한편, 잘 팔리지 않을 것을 경시하게 만드는 것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들의 생리다. 


삶의 본연의 목적이라는 잣대로 측량하면, 빈곤은 커다란 부고 무한한 부는 커다란 빈곤이다.


 한쪽에는, 불필요한 욕망을 자극하긴 하지만 그 결과로 거대한 경제력을 획득하는 사회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꼭 필요한 물질적 욕구만 만족시킬 뿐 생활수준은 그야말로 생존의 차원 이상으로는 결코 끌어올리지 못하는 에피쿠로스적인 사회가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국내도서
저자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 정명진역
출판 : 생각의나무 2005.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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