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2. 17:17, Book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시작하며
5년 전 즈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엄청난 몰입감으로 손에 꼽을 정도로 인상 깊은 책이었는데 책을 읽고 난 뒤의 우울감으로 서평을 검색하다 베르테르 증후군이라는 말을 발견하기도 했다.
도서관을 거닐다 알랭 드 보통의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철학 에세이를 발견했다.
철학자들의 삶을 통해 인기 없음, 충분한 돈을 갖지 못함, 좌절, 부적절한 존재, 상심한 마음, 곤경에 대한 위안의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 유쾌하게 느껴졌고 "찌질한 위인전"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기없음에 대한 위안
어느 사회나 구성원이 타인으로부터 의심을 받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믿어야 하고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관념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사회 관습의 일부는 상식으로 불리는, 경험에 따른 윤리적 판단이라는 거대한 집합체 안에 보다 직관적으로 녹아있다.
관습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공격적으로 비친다. 한국처럼 상식과 관습이 많은 공동체일수록 그 구속력은 강하다. 상식이 의문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상식에 대한 판단 자체가 너무나 민감한 것이어서 정밀한 검증의 표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만나는 사람마다 질문을 던졌고 사람들은 그의 질문에 당혹스러웠으며 그를 위협적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현재 생활방식과 지금을 만들어온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해야만 했다.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이 스스로의 모습을 모든 각도에서 진정으로, 그리고 정확히 점검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어느 식으로든 모순되거나 예외가 있는 명제를 단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편 우리가 관습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의 적의를 두려워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에 못지 않게 사회적 관습이라는 것은 당연히 그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널리 인기 있는 것들을 너무나 쉽게 옳은 것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어떤 반대에 봉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을 그릇된 것으로 확신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내세운 이유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라는 점, 인기가 없는 그 현상 자체가 아니라 인기를 잃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에 주목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반대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부여할지를 결정하는 요소는 그런 의견이 나오게 된 사고방식의 건전성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는 이와는 정반대의 경향으로 괴로워하는 것 같다.
나 또한 타인의 반대에 부딪힐 때 그 반대의 타당성보다 나를 먼저 돌아보는 생각의 회로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속했던 공동체를 생각해보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에 서툴어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공동체원들이 당혹스러움을 넘어 마음이 상하고 나는 그런 상황에 대해 다시 사과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처한 환경과 상황에 나 또한 무관하지 않으나 불건전한 이유에 의해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을 마음에 새길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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