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19. 11:40, Book
소년이 온다 - 한강
책을 마치기까지 2달의 시간이 필요했다. 책을 펴고 넘기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클라이막스는 아래 부분이다. 독자인 나에게 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질문하는 부분.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이라는 존재. 그토록 생명과 사랑을 부르짖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결론 뿐이다. 오마이뉴스의 김진수 기자의 글이 너무나 훌륭해서 이 기사로 서평을 대신하고자 한다.
그 외 찍어뒀던 것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던 겁니다.
80년 광주서 사라진 소년이 돌아왔다
유독 책장을 넘기기 쉽지 않은 책이 있다. 내게는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가 그랬다. 읽기 어렵다거나 지루해서가 아니었다. 그 내용이 지독하게 아프고 처참하기 때문이었다. 그 묘사가 자극적이거나 감정을 억지로 쥐어짜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짧고 담백한 문장들을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더듬듯이 간신히 읽고서 책을 덮고나면 한동안 눈을 질끈 감고 멍하게 시간을 보낼 정도로 아찔했다.
이 책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그려내고 있다. 본문을 읽다보면, 그 시절의 잔혹한 현장 속으로 어느새인가 따라들어가 광장에 덩그러니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계엄군의 총탄이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데도 인파 속에서, 혼란한 틈에서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채 황망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창 옆에 앉지 마소, 위험하다마시." (본문 90쪽 중에서)
책장을 펴면 마치 과거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소설 속에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동안,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과 독재정권의 진압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져있다. 철저한 고증과 남겨진 사람들을 취재한 끝에 어렵사리 얻은 결과물일 것이다. 그 덕분에 본문에는 뼈아픈 역사와 가슴 저릿한 문학의 향기가 동시에 고스란히 베어있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본문 79쪽 중에서)
그 날의 광주, 파괴된 영혼들의 기록
이야기는 1980년 5·18 당시 중학생이던 소년 동호를 비추면서 시작된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광주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수습하는 일을 돕는다. 그 계기는 친구 정대가 비참하게 죽어가던 모습을 광장에서 두 눈으로 지켜본 것이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합동분향소에 쏟아져 들어오는 주검들을 닦고 또 정리한다. 시신을 태극기로 덮고 그것이 피로 물드는 장면을 하릴없이 지켜본다. 그리고 향을 피운다. 이유없이 잔인하게 죽었을지라도, 그 날 죽어간 시민들이 그저 시취를 뿜어내는 고깃덩어리가 된 것은 아니라고 증명하겠다는 듯이.
상무관에 모인 누나들과 형은 점차 닥쳐오는 위험에 어린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설득한다. 엄마는 돌아오라고, 형들은 돌아가라고 하지만 소년과 소녀들은 그 곳에 스스로 남는다. 불타는 의지나 정의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기엔 두려움이 너무 짙고도 가득했다. 그저, 그렇게 밖엔 달리 행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집에 돌아가면 무력한 '희생자'가 되는 것 같았기에. 그런 비참한 모습으로 역사에 그리 기록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마침내 계엄군이 도청으로 진압하러 들어오자 소년들은 끝내 손에 쥔 총을 쏘지 못하고 체포되어 끌려간다. 그리고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군화에 짓밟힌다. 빨갱이 낙인과 인간성을 짓밟는 모욕도 뒤따른다. 이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덤덤하면서도 아릿하게 가슴을 찌른다. 마치 내가 고문실의 바닥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본문 134쪽 중에서)
<소년이 온다>는 거대한 서사시와 장엄한 분위기의 연출보다는, 고통받은 개인의 슬픔과 그들이 숨죽여야만 했던 어느 나날을 소상히 표현하는 쪽으로 전개된다. 친구와 가족이 한 순간에 주검이 되어 널브러진 모습을 지켜본 소년과 할머니, 더욱 잔인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에도 소극적인 태도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대열에 휩쓸린 진압부대원, 몇 십 년의 시간이 흘러도 지워낼 수 없는 고문의 기억에 고통스러워 하는 여성. 소설은 '그 날의 광주'로부터 파생된 폭력과 그것이 파괴한 영혼들의 기록과도 같다.
그 날 사라진 소년, 다시 돌아온다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거야. (본문 173쪽 중에서)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를 짓밟은 무력진압 때문에 소박하던 일상을, 총격을 피해 도망치느라 한 쪽 신발을, 살아있던 지인들을, 평화를, 목숨을 잃은 소년. 그는 끝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몸에 구멍이 나고, 확인사살을 당하고, 트럭에 실린 채로 어디론가 끌려가 버려졌기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도 인간성을 짓밟던 고문이 남긴 치욕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소설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이 간신히 남긴 기억의 잔해를 추슬러 그들이 견뎌야만 했던 참상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묵묵히 들여다보면 눈길이 닿는 곳마다 문장이 먹먹함이 되어 소리없이 번진다.
그 시절은 가상의 어느 시간대가 아니라 우리가 숨쉬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무런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야만적인 시대가 본문 안에 자리잡고 있고, 그 짐승같은 시간은 현실에서도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먼지 쌓여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뼛속 깊이 사무쳐 잊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처이고, 우리에겐 너무 쉽게 잊혀져가는 기억으로 남아서.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 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본문 207쪽, 작가의 말 중에서)
부당한 권력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폭력을 휘두를 때, 그 폭력에 무고한 시민이 무참하게 희생될 때, 그들의 소리없이 흘린 피가 다른 누군가의 눈물이 되어갈 때, 1980년 광주에서 사라진 소년이 다시 돌아오는 셈이다. 그리고는 그는 데자뷰처럼 피투성이 주검이 되어 이름없는 존재로 잊혀져 간다. 부끄러운 역사가, 부르지 못한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사그라들면 어김없이 그 날의 소년이 온다. 그 소년은 오늘날의 우리가 되어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힘없이 눈물을 쏟는다. 아픔의 슬픈 반복이다.
소설 <소년이 온다>는 '인간이기 위해서, 혹은 인간 이외의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은 과거 자신들의 죄를 덮어놓고 '역사의 재평가'라는 이름의 자기정당화를 노리는 독재세력이 건재한 시기에는 분명히 더 큰 울림을 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 물음이 만드는 마음의 일렁임은, 30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그려내고 있다. 본문을 읽다보면, 그 시절의 잔혹한 현장 속으로 어느새인가 따라들어가 광장에 덩그러니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계엄군의 총탄이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데도 인파 속에서, 혼란한 틈에서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채 황망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창 옆에 앉지 마소, 위험하다마시." (본문 90쪽 중에서)
책장을 펴면 마치 과거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소설 속에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동안,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과 독재정권의 진압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져있다. 철저한 고증과 남겨진 사람들을 취재한 끝에 어렵사리 얻은 결과물일 것이다. 그 덕분에 본문에는 뼈아픈 역사와 가슴 저릿한 문학의 향기가 동시에 고스란히 베어있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본문 79쪽 중에서)
그 날의 광주, 파괴된 영혼들의 기록
▲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표지. | |
ⓒ 창비 |
상무관에 모인 누나들과 형은 점차 닥쳐오는 위험에 어린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설득한다. 엄마는 돌아오라고, 형들은 돌아가라고 하지만 소년과 소녀들은 그 곳에 스스로 남는다. 불타는 의지나 정의감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기엔 두려움이 너무 짙고도 가득했다. 그저, 그렇게 밖엔 달리 행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집에 돌아가면 무력한 '희생자'가 되는 것 같았기에. 그런 비참한 모습으로 역사에 그리 기록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마침내 계엄군이 도청으로 진압하러 들어오자 소년들은 끝내 손에 쥔 총을 쏘지 못하고 체포되어 끌려간다. 그리고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군화에 짓밟힌다. 빨갱이 낙인과 인간성을 짓밟는 모욕도 뒤따른다. 이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덤덤하면서도 아릿하게 가슴을 찌른다. 마치 내가 고문실의 바닥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본문 134쪽 중에서)
<소년이 온다>는 거대한 서사시와 장엄한 분위기의 연출보다는, 고통받은 개인의 슬픔과 그들이 숨죽여야만 했던 어느 나날을 소상히 표현하는 쪽으로 전개된다. 친구와 가족이 한 순간에 주검이 되어 널브러진 모습을 지켜본 소년과 할머니, 더욱 잔인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에도 소극적인 태도로 멍한 표정을 지으며 대열에 휩쓸린 진압부대원, 몇 십 년의 시간이 흘러도 지워낼 수 없는 고문의 기억에 고통스러워 하는 여성. 소설은 '그 날의 광주'로부터 파생된 폭력과 그것이 파괴한 영혼들의 기록과도 같다.
그 날 사라진 소년, 다시 돌아온다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거야. (본문 173쪽 중에서)
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를 짓밟은 무력진압 때문에 소박하던 일상을, 총격을 피해 도망치느라 한 쪽 신발을, 살아있던 지인들을, 평화를, 목숨을 잃은 소년. 그는 끝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몸에 구멍이 나고, 확인사살을 당하고, 트럭에 실린 채로 어디론가 끌려가 버려졌기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도 인간성을 짓밟던 고문이 남긴 치욕과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소설은 산 자와 죽은 자들이 간신히 남긴 기억의 잔해를 추슬러 그들이 견뎌야만 했던 참상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묵묵히 들여다보면 눈길이 닿는 곳마다 문장이 먹먹함이 되어 소리없이 번진다.
그 시절은 가상의 어느 시간대가 아니라 우리가 숨쉬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무런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야만적인 시대가 본문 안에 자리잡고 있고, 그 짐승같은 시간은 현실에서도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조용히 먼지 쌓여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뼛속 깊이 사무쳐 잊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처이고, 우리에겐 너무 쉽게 잊혀져가는 기억으로 남아서.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 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본문 207쪽, 작가의 말 중에서)
부당한 권력이 스스로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폭력을 휘두를 때, 그 폭력에 무고한 시민이 무참하게 희생될 때, 그들의 소리없이 흘린 피가 다른 누군가의 눈물이 되어갈 때, 1980년 광주에서 사라진 소년이 다시 돌아오는 셈이다. 그리고는 그는 데자뷰처럼 피투성이 주검이 되어 이름없는 존재로 잊혀져 간다. 부끄러운 역사가, 부르지 못한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사그라들면 어김없이 그 날의 소년이 온다. 그 소년은 오늘날의 우리가 되어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고 힘없이 눈물을 쏟는다. 아픔의 슬픈 반복이다.
소설 <소년이 온다>는 '인간이기 위해서, 혹은 인간 이외의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은 과거 자신들의 죄를 덮어놓고 '역사의 재평가'라는 이름의 자기정당화를 노리는 독재세력이 건재한 시기에는 분명히 더 큰 울림을 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 물음이 만드는 마음의 일렁임은, 30년이 넘게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소년이 온다> (한강 씀 | 창비 | 2014.5. | 1만2000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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